어떠한 것보다 앞서 나가 행동한 선행 과정의 절대적 영향력은 일정한 질서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하는 자의적인 것들이 마땅히 따르고 지켜야 할 본보기가 되는 규범적 도식이 만들어놓은 경쟁에서
거역하거나 버티고 저항하는 새로운 성과나 업적인 창조 역사속에서 앞으로 나타날
주요 장면이나 형편의 사건에 가려버릴 정도로 지배적이었다.
이러한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은
아직 흥행을 기획하는 사람인 프로모터들의 이익을 보려고 하는투기 성향은 아닐지라도
오로지 묵은 것을 완전히 고쳐 새롭게 바꾸려고 힘쓰는 사람인 '혁신자'들의 그 성급함과 오만함
그리고 열정적인 격렬함이었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이러한 광란의 질주는 앞으로 다가올 일을 미리 짐작하여 말하는
예언자들과 이전의 관습과 제도, 방식 따위를 단번에 깨뜨리고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급격하게 세우려는
그들의 혁명을 가장 수수하게 소박한 야심으로 이끌어내어, 운영하는 행정적인
옳고 정의로운 정당성을 부여받거나
제정 러시아의 화가(1844~1930)로 사회 체제에 대한 비판적 내용을 내포한 그림을 그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선구자로 꼽히고 있으며, 풍속화에 많은 걸작을 남긴
레핀 (Repin, Il’ya Efimovich)의 거짓 경쟁에 대한 성급한 보상을 받는 것에 만족하도록 만들었다.
레핀의 작품에는 <볼가 강의 배를 끄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과거의 영향력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모네의 대성당 이후 한 세기가 지나 나타난 앤디 워홀의 작품들이었다.
모네 (Monet, Claude)는 프랑스의 화가이다.(1840~1926)
마네, 세잔 등과 함께 신예술 창조 운동에 힘썼으며,
1874년에 출품한 <인상ㆍ일출(日出)>이란 작품의 제명에서 인상파란 이름이 생겨났다.
‘색조의 분할’이나 ‘원색의 병치’를 시도하여 인상파 기법의 전형을 개척한 화가이다.
작품으로는 <수련>, <소풍> 등이 있다.
앤디 워홀의 그의 작품을 통해서 회화는 더 이상 햇빛과의 경쟁을 하지 않았다.
이제는 슈퍼마켓의 불빛과 거리 속 레온 사인과 겨루게 되었다.
'쇼 비즈니스'에 걸맞은 프로모션을 갖춘 앤디 워홀의 솜씨가 기가 막히게 좋은 '팩토리'는
일련의 수프 캔과 스타의 초상화, 영화와 락 콘서트, '행복한 소수'를 위한 '이벤트', 그리고
전문 잡지 <인터뷰>를 한결같이 똑같이 일정한 공장처럼 찍어내어 생산해 냈다.
이러한 앤디 워홀의 창작은 늘 언제나 한결같이 미디어적인 편성 안에서 이루어졌다
한편 뉴욕은 새로운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1936년 코르뷔지에는
뉴욕을 "국경 없는 세계의 중심"이라고 일컬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뉴욕은 로마의 아테네와 파리를 거쳐 온 배턴을 이어받아 미술의 중심지를
서쪽으로 옮겨놓았다. 유대계 독일인으로 마르크스주의자이자 문학평론가이며 철학자인
발터 벤야민은 '19세기의 중심지'로서 치유 불능의 운명 속에 파리를 가두어놓았다.
그러나 뉴욕의 패권은 절대적인 만큼 일시적이었다.
사물을 보는 안목이나 아량이 좁았던 뉴욕은 협소한 서구적 전통 속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과오를 범했으며,
베트남 전쟁으로 결국 타격을 입은 미국이라는 국가의 영예에 집착함으로써 고통을 당했다.
무수히 논박당한 초강대국의 함정에 빠진 뉴욕의 패권은, 되돌릴 수 없는 몰락과 그 창조성에 불을 붙였던 과열에
더 이상 저항할 수 없게 되었다.
미국 내부에서조차, 아직 태평양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이전 상태인 세계의,
이 새로운 중심을 향해 있는 서쪽 해안의 경쟁이 뚜렷해졌다. 또한
번창하는 다른 대도시들의 활력이 대두되었으며, 나아가 대지 미술이나
제임스 터렐이 중시했던 사막의 평온함도 모습을 드러냈다.
제임스 터렐 ( JAMES TURRELL)은 미국의 설치미술가이다. 빛의 효과를 재현하는 방법을 탐구했다
터렐의 실험들은 그가 현재 전념하고 있는 설치 미술의 미학적 틀을 형성하는 데 발판을 제공해주었다.
제임스 터렐의 가장 야심 찬 작품으로는 아마도 로던 분화구 프로젝트이다. 이것은 애리조나 사막 한가운데 있는
사화산에 여러 개의 터널을 파는 작업이다. 터렐은 이 작업을 위해 1974년부터 조사를 시작했다.
제임스 터렐의 제작 의도는, 관람자가 빛을 마치 손으로 만질 수 있듯이 물질적 존재로서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이 야심찬 프로젝트를 완성하려는 욕심은 관람자에게 마법적이고 초자연적인 빛의 효과를 경험하게 하고픈
예술가로서의 야심과도 서로 통한다고 할 수 있다.
"본다는 것은 감각적인 행위이다. 그것에는 달콤한 맛이 있다."라고
제임스 터렐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