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주의 마크 로스코는 전쟁 후 거대한 크기의 작품들을 완성했다.
그이 작품은 광휘를 띠는 채색과 달콤한 재료의 부드러운 접합을 이루어
자유로운 추상표현주의를 완성했다.
색의 밀도와 표면, 그리고 가장자리는 사람과 같은 높이에서 관조하며 나아가
명상의 순수한 대상을 이루는 두드러진 구성 요소가 되었다.
묘석이자 입구였던 그이 그림들은 가능한 한 모든 기준들을 거부하고 시간과 공간에 도전했다.
그래서 마크 로스코 작품은 상을 거부하는 정신을 만들어 냈으며 미술과 성스러움의 아득한 결합을
되살려냄으로써 진정한 회화의 성당을 구축함에 힘썼다.
마티스는 '자신들의 상상력에 걸맞은 공간'을 정복하려 떠난 이 화가들을 굽어보는
수호의 그림자였다. 뉴욕의 거대한 화단은 <게르 니타>와 마찬가지로
뉴욕 현대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던 <붉은 아틀리에>의 교훈을 이어받아
마티스 자신도 레지나 호텔과 파피에 테쿠페 작품들 및 로제르 성당의 작업을 통해
이 그림의 기법을 끊임없이 쇄신하고 강화하였고, 많은 화가들은 배경과 형태의
대립을 없애고 데생과 회화의 범주를 벗어던지기 위해 검은색에 우위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마티스는 1914년 이 검은색을 향해 수수께끼 같은 <프랑스 창>을 열어놓았으며,
이 작품은 1971년에야 아라공의 <소설 마티스> 표지에서 확인되었다.
1945년 아실 고르키에서 1960년 프랭크 스텔라의 작품들까지
1948년에서 1949년 데 쿠닝의 몇몇 작품에서 프란츠 클라인의 강렬한 기호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잭슨 폴록과 로버트 머더웰을 거쳐 '절대적 색'은 새로운 추상의 원동력이었다.
새로운 추상은 1963년 애드 라인하르트가 시도한 검정 위의 검정 회화라는 극단적 실험으로까지
이어졌다.
말레비치의 예언적인 <검은 사각형>이 등장한 지 거의 반세기 만의 일이다.
1964년 로스코가 그린 어두운 회화 연작 속에서는 이 작품의 둔탁한 메아리를 찾을 수 있었다.
이 연작은 아마도 '엠마누엘 레비나스가 말한, 미술가가 그린 형태에 선행하는
비정형 물질의 모호함'을 추구한 작품이었다.
유럽에서는 '사실주의' , '형식주의' 와 대립하는 '살아 있는 형태'에 관한 논쟁 저편에,
추상적 아카데미즘이나 서정적 추상을 넘어 당파나 유파와 동떨어진 두 화가가 존재했다.
매우 비극적이었던 고야의 유산을 송두리째 물려받은 스페인의 안토니오 사우라의 격렬한
표현주의와, 간소하고 엄숙하며 역광선처럼 눈이 멀게 만드는 피에르 술라주의 회화적 위대함은
당시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뉴욕 무대에서 단순한 메아리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들은 본질적인 검은색의 영속성과 서양 미술의 여러 세기를 관통하는 그 집요한 영향력을 되살려냈다.
영원한 창세기의 색 검정색은 쇄신의 준엄한 수단이며 검은색은 에두아르 마네를 근대 미술의
창시자로 생각했던 조르주 바타이유가 그의 그림에서 발견했던, " 그림 그리는 기술 이외에는
다른 어떤 의미도 갖지고 있지 않은 회화"를 요구했다. 또한 검은색은 나들이 옷차림의 화가들로
채워진 1868년의 <발코니>와 같은 그림들의 신비를 되살려 냈다.
마티스는 <프랑스 창>에서 이러한 인물들의 모습을 지워버렸으며, 이 작품에서 이미
폭풍의 전의 시끄러운 침묵 중 하나가 으스대는 모습을 보여줬다.
라루스 현대미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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