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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4

서양미술사 중에서 팝 미술과 대중문화

회화의 기준과 모습과 주제가 바뀌어간다. 해밀턴은 마르셀 뒤샹의 요청으로 의 복제품을 제작하였지만 이것은 단절과 새로운 메티포의 투명성이라는 그의 진정한 계보를 보여주었다. 이처럼 미술은 신랄한 아이러니를 통해 '세상 밖에 있는' 미술의 전총적 아우라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조물주라는 과대망상과 추상표현주의의 우주적 야심을 내던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미술가는 '스타 시스템'의 명성과 유행에 부합하는 작품으로 만족하기 시작했다. 캔버스는 넘쳐나는 상품들에서 끌어낸 요소와 일상을 침범하는 이미지로 채워졌으며, 자기만족적인 방식으로 새로이 표현되기 시작했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그라피티뿐만 아니라 베이컨, 뒤뷔페, 키타이에게서 비롯된 구상의 요소와, 무기력한 듯 교묘한 솜씨로 표현되어 있는 정교..

Art 2020.09.24

서양미술사 903

초현실주의 마크 로스코는 전쟁 후 거대한 크기의 작품들을 완성했다. 그이 작품은 광휘를 띠는 채색과 달콤한 재료의 부드러운 접합을 이루어 자유로운 추상표현주의를 완성했다. 색의 밀도와 표면, 그리고 가장자리는 사람과 같은 높이에서 관조하며 나아가 명상의 순수한 대상을 이루는 두드러진 구성 요소가 되었다. 묘석이자 입구였던 그이 그림들은 가능한 한 모든 기준들을 거부하고 시간과 공간에 도전했다. 그래서 마크 로스코 작품은 상을 거부하는 정신을 만들어 냈으며 미술과 성스러움의 아득한 결합을 되살려냄으로써 진정한 회화의 성당을 구축함에 힘썼다. 마티스는 '자신들의 상상력에 걸맞은 공간'을 정복하려 떠난 이 화가들을 굽어보는 수호의 그림자였다. 뉴욕의 거대한 화단은 와 마찬가지로 뉴욕 현대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

Art 2020.09.03

서양미술사 이야기 / 피카소 큐비즘 마티스 인상주의

절충주의와 과잉 파리의 미술계는 중대한 동요를 겪었다. '해방된' 회화의 획일적 상황이 무너지기 이전인 1948년, '전통'을 향한 호소는 선택된 미술의 땅인 프랑스의 결정적인 역할을 부각 시켰다. 프랑스는 한 세기 동안 인상주의와 큐비즘이라는 중요한 두 운동을 태동시킨 곳이었다. 따라서 추상과 표현주의는 배격되었다. 파리파의 중심적 역할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이 '전통'에서 그것들은 낯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양하고 전 세계에 걸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피에르 프랑카 스텔의 말에 따르면 이 전통은 오직 "미래의 미술이 게르만주의의 병적인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줄 수 있을 뿐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피카소는 어떤 모델 이상의 존재였다. 그리고 마티스의 방대한 파피에 데쿠페들은, 그 자신의..

Art 2020.08.18

서양 미술사 페르낭 레제 / 페르난드 레게르 회화 그림 작품

5년간의 미국 망명으로 활력을 되찾은 페르낭 레제는 1947년 의기양양하게 돌아왔다 1940년 10월에 그를 뉴욕으로 데려다주었던 배의 발치에서 물놀이를 하는 젊은 마르세유 부두 노동자들의 이미지 속에서 페르낭 레제는 회화의 정면성을 깨뜨릴 방식을 끌어냈다. 그때부터 그가 그려낸 형상들은 현재의 중압감에서 벗어나 획득한 자유를 담은 회화적 공간 속으로 던져졌다. 뉴욕의 밤에 매혹된 레제는 색을 데생에서 분리하고, '탄력적 표현'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 표면 위에는 곡예사들과 자전거 타는 사람들, 그리고 음악가들이 자리 잡았다. 그는 프랑스로 돌아오자마자 피카소와 마찬가지로 공산당에 가입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미술을 만들어내면서 커다란 주제들만을 다루는 데 동참했다. 그는 1924년 ..

Art 2020.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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