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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 19

아방가르드의 시작과 미니멀 아트에서 대지 미술까지

1962년 소비에트 연방이 쿠바에 미사일을 배치하면서, 시작된 위기는 세계를 핵전쟁 일보 직전으로 몰아갔다. 전쟁은 가까스로 피해 갔지만, 공포스러운 균형은 동구와 소구 사이의 그 어느 때보다도 견고하고 철의 장막을 무너뜨렸다. 에비앙 협정은 알제리 전쟁에 종지부를 찍었으며 식민 제국들이 전쟁을 그만둘 무렵에 미국 공군은 북베트남을 폭격하기 시작했다. 두 세력 미국과 베트남은 전면적으로 대치했으며, 둘 중 하나 누구든 자신의 진영을 선택해야만 했다. '입대하거나 재입대하라'는 명령에 응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은 없었다. 이렇게 조직화되는 세상 앞에서, 미술은 자신의 광란의 질주를 가로막을 수 있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는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회화와 조각의 전통적인 미적 범주는 폭발하기 시작했다. 사..

Art 2020.10.13

서양미술사 중에서 팝 미술과 대중문화

회화의 기준과 모습과 주제가 바뀌어간다. 해밀턴은 마르셀 뒤샹의 요청으로 의 복제품을 제작하였지만 이것은 단절과 새로운 메티포의 투명성이라는 그의 진정한 계보를 보여주었다. 이처럼 미술은 신랄한 아이러니를 통해 '세상 밖에 있는' 미술의 전총적 아우라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조물주라는 과대망상과 추상표현주의의 우주적 야심을 내던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미술가는 '스타 시스템'의 명성과 유행에 부합하는 작품으로 만족하기 시작했다. 캔버스는 넘쳐나는 상품들에서 끌어낸 요소와 일상을 침범하는 이미지로 채워졌으며, 자기만족적인 방식으로 새로이 표현되기 시작했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그라피티뿐만 아니라 베이컨, 뒤뷔페, 키타이에게서 비롯된 구상의 요소와, 무기력한 듯 교묘한 솜씨로 표현되어 있는 정교..

Art 2020.09.24

서양미술사 중에서

미술의 영역을 사진술사에게 넘어간 그때 화가의 작업 대상이자 주제인 회화의 특수성을 우선시함으로써 단절은 이행된 것처럼 보였다. 완성되지 않은 것, 남겨진 것, 그려지지 않은 것은 정통적인 회화적 방식과 대등한 물질적 명백함의 상태를 보였다. 이대부터 유일한 승선자인 미술가는 사회에서 점점 더 소외되어가는 향해 속에 들어갔다. 회화의 단절된 연속성의 모습처럼, 미술사의 흐름 속에서 방향 이탈이 일어나고 만 것이다. 한 세기 동안 많은 실험과 형식주의자들의 차가운 태도에 자주 위협받았던 아방가르드 유파들이 드디어 일어났으며, 미술가들은 종종 자신의 특권에 집착하는 미술계의 볼모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1962년 앤디 워홀의 과 더불어 그 방향 이탈이 끝나기 시작했다. 앤디 워홀의 작품 '마릴린'은 마릴린 ..

Art 2020.09.13

서양미술사 '팝'에 대하여

'팝'이라는 단어는 1956년 리처드 해밀턴의 작은 콜라주 작품에 처음 선을 보였다. 이 작품은 여러 영역을 망라하는 인디펜던트 그룹이 런던의 화이트 채플 아트 갤러리에서 개최한 전시회 포스터 초안이었다. 리처드 해밀턴은 그 자신이 광고 작업을 한 적이 있었으며, 현대 미술 인스티튜트에서 4년간 보석 세공술과 활판 인쇄술, 산업 디자인을 가르쳤다. 그리고 해밀턴과 여러 건축가 화가, 디자이너들은 놀라운 환경을 실현했다. 그들은 문화적 공간 속으로 일상을 옮겨와 그것의 전복을 제시했고, 열광적인 야외 축제의 형태를 띤 이 진정한 집단적 퍼포먼스는 매우 냉소적이면서 전조적인 성격을 표명했다. 라는 긴 제목을 가진 리처드 해밀턴의 콜라주는 가전제품과 같은 기계적 복제 도구들이 부각되어있는 기발한 재산 목록을 ..

Art 2020.09.10

서양 미술사 26

르 코르뷔지에는 1943년부터 정리한 '모뒬로르(Modulor)'에 관한 첫 번째 개론서를 1950년에 출판하였다. 이 측정 시스템은 '팔을 치켜든 인간'의 형상에 근거한 것으로 2.16미터의 단위에 맞춰져 있었다. 이 시스템은 주거 시설의 산업적 생산을 지배하던 무질서에 종지부를 찍고, '기계 문명'의 모순을 극복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는 국제적인 모듈식 배열의 한가운데에 '6피트의 인간'을 다시 위치시켰다. 아테네 헌장(1933년)과 도시 계획의 네 기능을 주창한 르 코르뷔지에는 이듬해 인도 펀자브주의 플래닝 어드바이저로 임명되었다. 펀자브주의 주도인 찬디가르의 건설을 맡았으며, 이 도시는 1958년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르 코르뷔지에는 이 도시를 '눈부시게' 만들어냈다. 그는 네루와의 협조적인 관계..

Art 2020.08.26

서양미술사 1950년대 이야기 중에서

전후 세계 곳곳에서 재건과 소비의 시대를 맞아 광고의 놀라운 도약과 가정용 가전제품의 유례없는 발전으로 정돈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감수성의 물꼬가 시작되었다. 1957년 브뤼셀 만국 박람회에서 고도의 상징성을 띤 아토미움이 솟아올랐다. 이 건축물은 공간 속에 태평양의 원자에 대한 복수를 새겨놓은 것이다. 그러나 이 엑소시즘에 생생한 형태를 부여한 사람은 춤추듯 움직이는 조각을 만들어낸 조각가 알렉산더 콜더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이 미국인 거장은 철사로 만든 작은 서커스를 상연하여 몽파르나스의 친구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1930년대에 콜더는 공간 속의 놀라운 데생에 전념하였는데, 그 기법은 마치 안무와도 같았다. 1950년대가 되어 이러한 기법은 열망에 오던 거대한 규모를 띠게 되고 마르셀 뒤샹과 한스..

Art 2020.08.24

내적 제약의 요구에만 복종했던 현대미술...

실존적 경험으로서 세분되고 단편적이며 일시적인 성격을 띤 미술은 '내적 제약'의 요구에만 복종하였다. 창조적 행위는 위험한 안무의 덧없는 순간성과 바타이유가 라스코의 저 깊은 곳 속에 위치한 미술의 기원에서 길어 올린 태고의 확실성 사이에서 동요하였다. 이러한 창조 행위는 한계를 모르는 대담한 탐구가 형식상 발견하는 우연과 표현의 필요성을 결합시켰다. 1930년대의 추상은 철퇴를 맞게 되었다. 기하학적인 낙관론에 의거해 세워진 이 '죽음의 무대 장식'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았다. 샤를 에스티엔의 소책자 [추상 미술은 아카데미즘인가?]는 1950년 드반의 추상 미술 아틀리에 설립을 매우 환영하였다. 이러하여 다른 방식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처럼 재구성되었던 195년대의 미술계에서 50대의 한스 하르퉁은 ..

Art 2020.08.23

서양 미술사 현대미술 중 브람 반 벨데는...

브람 반 벨데는 사무엘 베케트 연극의 한 인물처럼 " 실패하면 실패할수록 더 성공한다."라는 자코메티의 신조를 자신의 것으로 삼았다. 자신을 스스로 "완전히 파손되어 어쩔 줄 모르는 인간"으로 칭했던 그는 1940년에 베케트를 만났다. 그의 그림은 실패와 존재에 대한 무능력함의 회화로서 '끝없는 폭로이자 베일 뒤의 베일, 면 위의 면, 불완전한 투명성, 그리고 벗겨낼 수 없는 것, 무(無)를 향한 폭로'였다. 그것은 또한 시인 자크 퓌트망이 말하는 타협을 모르는 독창성의 '침묵'이기도 했다. 퓌트망은 "예술의 일상적인 수다 속에서, 어떤 사람이 아무것도 할 이야기가 없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며 그의 중요성을 나타내 주는 표시"라고 이야기하였다. 사실주의의 확실성 및 전쟁 이전의 기하학적 추상의 세계에서 멀..

Art 2020.08.22

서양미술사 중 유럽의 부활

프랑스의 미술 기관들은 아라공을 수장으로 하는 공산주의 지식인들이 폐허가 된 미술계 한복판에 내던진 폭탄과 싸우고 있었다. 프랑스식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는 1948년 가을 미술전을 여는 영광을 누렸으며, 앙드레 푸주롱과 더불어 행방기의 국가 미술상을 받는 기적을 달성했다. 같은 해, 프랑시스 그뤼베르가 사망했다. 프랑시스 그뤼베르는 예리한 풍경화와 아틀리에 사이에서 흔들리는 사실주의를 보여준 인물이었다. 그의 아틀리에에서 모델의 고독과 허약하고 벌거벗은 잔인한 진실은 거리를 두고 포착되었다. 이는 그가 공간에 천착하고 인물을 엄격하게 멀리하는 배경의 비참한 세부에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이다. 참상 묘사 주의의 새로운 신동이 나타난 것도 역시 이해였다. 베르나르 뷔페가 그린 뚜렷한 검은 윤곽의 최초의 굶주린..

Art 2020.08.21

서양미술사 중 발튀스, 살바도르 달리

과묵한 태도로 시간을 초월한 발튀스가 있었다. 19세기에서 물려받은 회화적 전통을 고집하였으며, 그 속에서 드가와 쇠라, 세잔, 보나르가 서로 교차하였다. 그는 고전적 구성을 통해 포착한 모호한 모습의 소녀들로 가득 찬 관능성을 만들어냈다. 이 고전적 관능성의 신중한 실내 화파적 방식은 역설적으로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에서 차용하거나, 중세의 몇몇 프레스코화에서 가져온 것으로 향수 어린 통속 판화의 진부함과 완전히 중첩되었다. 그는 이나 의 주제를 다시 다루기도 했다. 그러나 문학에 정통했던 이 화가는 연극의 무대 장식, 특히 알베르 카뮈의 와 의 무대 장식을 통해 자신의 진정한 척도를 발견했다. (1933)에서도 이미 드러난 적이 있는 무대 장식술에 대한 이러한 관심은 (1952~1954)에서 당당하게..

Art 2020.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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