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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 몬드리안 볼스 르네 추상적 풍경화 사실주의 세르게이

u-noh 2020. 8. 19.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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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oh의 여름나무 시리즈 중  봄

 

 

   1945년 르네 드루엥 갤러리에 전시된 장 포트리에 의 <인질> 연작은 

프랑시스 퐁주에게는 '공포의 미'를 확인시켜 주었으며,

앙드레 말로는 이 그림들에서 '고통의 상형 문자'를 발견했다.

같은 해 같은 갤러리에서는 한층 더 대담하게

볼스의 작품들을 전시했다. 그의 색채 투사와 한점 한 점의 색들, 묘선, 그라타주, 그리고

못이나 손가락, 붓 자루로 소재에 새긴 홈은 젊은 조르주 마티외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그는 곧 서정적 추상의 떠들썩한 주인공이 되었다. 이 서정적 추상은 작품 속에서 한문명

전체의 열망과 지식, 미학을 승화시켰다.

 

  또 한 명의 대담한 화상인 드니즈 르네는 1944년 그녀의 이복 아틀리에에서

바사렐리의 작품을 전시했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막스 에른스트와 함께 바사렐리의 작품을 전시했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막스 에른스트와 함께 자신의 갤러리를 열었으며, 1957년에는 미술관들보다

앞서 몬드리안의 첫 번째 회고전을 제안하였다. 

1945년, 마티뇽가의 모르 갤러리에서는 첫 번째 '살롱 드 메'가 열렸다.

파리파의 연단이었던 이 전시회는 로제 비시에르에게 경의를 표했으며, 추상적인 풍경화 기법과

그뤼베르의 사실주의를 대조해 보여주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전시회에는 섬광 같은 일생을 

살았던 니콜라 드 스타엘이 모습을 드러냈다. 추상을 거슬러 올라갔던 그는 1955년 앙티브 요새의

성벽 발치에서 자살함으로써 생을 마감했다. 절대를 추구하며 승화된 형상의 수백 개 '그림 덩어리들'이

그가 죽기 전 몇 달 동안 그곳에서 분출되었다, 같은 해 에스키스 갤러리에서는 러시아 출신의 또 한 명의

프랑스 화가 세르게이 폴리아코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비범한 색채 감수성을 지녔던 그는 기하학적 엄격성이나, 기호와 서정적 충동과 모두 거리가

먼 새로운 추상의 주창자가 되었다.

 

 

   미술관은 갤러리의 이러한 활력에 곧 활기차게 화답하기 시작했으며

미술관들의 적극적 활동은 월렘 샌드버그와 함께 시작했다.

스테델릭 미술관의 책임자였던 샌드버그는 1950년 코브라에 의해 결집한 매우

자유분방한 젊은이들을 맞아들여 그의 임기를 시작했다.

이 전시회는 미술관에서는 한 번도 열린 적이 없었던 최초의 커다란 현대 미술 전시회로서

새로운 시대를 예고했다.

이 새로운 시대에 이제 미술관은 가장 반 순응주의적인 미술적 형태의 진영에 참여함으로써

전투적이고 '현대적'인 것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술관이 풍부한 컬렉션 작업과

보존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전 세계의 미술관들은 점차 살아 있는 미술과 한시적인 전시회에 문을 열기 시작했다.

미술관들은 곧 '사건'의 장소가 되었으며 서로 부각되기 위해 다투는 치열한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 전통적인 기관들은 유행적 효과의 실사적인 경주 속으로 내던져짐으로써 곧 이러한 경쟁을 

필요로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라루스 현대미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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