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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미술사 페르낭 레제 / 페르난드 레게르 회화 그림 작품

u-noh 2020. 8. 17.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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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oh의 마음의 나무   캔버스 유채

 

 

 

   5년간의 미국 망명으로 활력을 되찾은 페르낭 레제는 1947년 의기양양하게 돌아왔다

1940년 10월에 그를 뉴욕으로 데려다주었던 배의 발치에서 

물놀이를 하는  젊은 마르세유 부두 노동자들의 이미지 속에서 페르낭 레제는 

회화의 정면성을 깨뜨릴 방식을 끌어냈다. 그때부터 그가 그려낸 형상들은

현재의 중압감에서 벗어나 획득한 자유를 담은 회화적 공간 속으로 던져졌다.

뉴욕의 밤에 매혹된 레제는 색을 데생에서 분리하고, '탄력적 표현'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 표면 위에는 곡예사들과 자전거 타는 사람들, 그리고 음악가들이 자리 잡았다.

그는 프랑스로 돌아오자마자 피카소와 마찬가지로 공산당에 가입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미술을 만들어내면서 커다란 주제들만을 다루는 데 동참했다.

 

 

 

  그는 1924년 <기계적 발레>라는 영화를 제작했다.

이 영화 속에는 4년 전에 만들어지기 시작한 한 만화 영화의 단편들과, 그의 친구이자 몽파르나스의

여자 조언자였던 키키의 모습, 그리고 산업적인 사물들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모든 표현 방식을 탐구하고 '에스프리 누보'의 틀을 갖출 것을 열망하였다.

하지만 그는 오래된 전래의 기법들로 회귀하는 것을 선호했다.

이 기법들이야말로 건축물과 현대 도시 속에 위치해야 할 기념비적인 

어떤 미술에 적합한 유일한 것이었다.

이 기법이란 아직 건물 정면을 닦아내지 못한 시대의 거리의 어두운 박공들 위에 그려진

아페리티프 상표들을 커다란 채색 글자로 표현함으로써 도시의 잿빛 풍경을 환히 밝히는 것이었다.

1960년대까지 거리에는 한결같이 검은색 자동차들과 어두운 차림의 사람들이 지나다녔기 때문이다.

그는 1949년에 비요에서 도자기와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걷는 꽃>의 작업을 시작했는데. 이 작품은 하나의 돌을 여러 색으로 채색 한 조각품으로,

미래의 축제를 주재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돌의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어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작품 세계를 완성한 것은 1954년 '움직이는 원들'의 모습으로 표현한 서커스를 통해서였다.

<위대한 퍼레이드>는 앞으로 다가올 미술적 풍경의 전조적 성격을 띤 작품으로, 철저히 현재의 시간에 속한 미술을 

만들어냈다.  이 작품은 강렬한 형상들로 가득 채워져 있으며, 그 형상들의 단순 명료한 위엄성은 미디어와 광고, 현대

도시의 원색적인 네온사인의 영상 세계와의 친밀성을 통해 문화적 서열을 뒤엎었다.

그는 1955년 죽음을 맞기 전 지프 쉬르 이베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이 작품들이 실현될 수 있었던 것은

마치 전우와도 같은 자유와 진실이 함께 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들은 전적으로 내가 고독 속에서 홀로 보고 느꼈던,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새로운 현실에 대한 관찰을 통해 만들어졌다."

 

                                                          

 

 

                                                                                             라루스 서양 미술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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