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일기를 쓰는 또다른 방법일 뿐이다."
파블로 피카소
피카소가 그린 게르니카는
스페인 게르니카 지역일대를 나치군이 1937년 4월 26일날
24대의 비행기로 폭격하는 장면을 실은 스페인 내전 신문내용을 보고
한 달 반 만에 유성페이트로 그린 대벽화 그림이다.
크기가 3.49m x 7.77m이다.
위치는 파리 국립 소피아 왕비 예술센터에 있다. (1937년작)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 직후에 미술의 중심지로서 자리를 잡고 싶었던 파리미술계는
최대한 신속하게 미술계의 패권을 잡고 싶어서, 1944년 가을 미술전을 열었다.
그 내용은 파블로 피카소에게 헌정하는 엄청난 회고전이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마티스의 회고전까지 열었다.
이 모든 과정들이 조용히 넘어가지는 않았다.
그것은 파블로 피카소가 자신이 공산당 가입한것을 공식적으로 선포를 했기 때문에
보자르 학교 학생들의 광적이고 집단적인 공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피카소의 작품들이 보자르 학교 학생들의 손에 의해 파손되기 이를 정도였다.
하지만 이러한 사건은 대수롭지않게 넘어갔다.
그 당시 살아있던 가장 위대한 화가 피카소는 전세계적인 화해의 상징으로
평화의 아이콘 비둘기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가장 위대한 화가 파블로 피카소는 1949년
세계 평화 회의를 위해 수없이 수 많은 비둘기를 그렸다.
그리다 만것처럼 보이는 그림 납골당은
피카소가 전쟁의 무상함과 잔인함을 고발하는 그림이다.
프랑스와 독일이 적대적 관계가 되고 1차 세계대전에 이어 2차 세계대전이 계속해서 발발하자
자신의 후원자였던 칸바일러와의 관계가 어려워졌다
이 때 피카소는 자신이 추구했던 화풍에 대해서도 공격을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피카소는 게르니카 작품에 이어
무명용사의 죽음과 사랑하는 여인과 아이들의 죽음을 표현한 납골당 작품을 통해
인간이 만들어낸 해악중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라는 참상을 표현했다.
납골당 그림 상단부의 정물은 그리다가 색을 칠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전쟁의 참화 속에서 정물을 그리며 아름다움을 그려낼 수 있는가?라는 자문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리다 만 것처럼 된 그림이 완성된 것이다.
납골당 그림은 청회색이 두드러진 색으로 작품을 표현하여
당시 전쟁이 얼마나 참혹하고 아름답지 않았을 뿐더러,
무미건조하고 무의미한 것이라는 점을 색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또한
납골당 그림을 자세히 보면 탁자 밑이 무덤이다.
전쟁으로 인해 사살된 희생자들의 모습을 통해
파블로 피카소는 전쟁의 무상함과 잔인함을 고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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