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0 - [Art] - 전통을 부정한 다다이즘과 전위적 미술운동인 누보 리얼리즘
위의 글에 이어서 구상이 어떻게 다시 살아났는지에 대해 알아보자
1960년대 중반부터 파리에서는
프랑스인 미술 비평가 제랄드 가시오 탈라보가 중심이 되어서
앞으로 ★‘서술적 구상(具象)’의 출현을 알리는 일련의 전시회를 열었다.
이 명칭은 일부로 논쟁적 의도로 채택된 것이다.
벌써 여러 가지 유파로 이미 포화 상태에 있었던 미술사에
또 다른 체계화된 이론이나 학술을 더하는 일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서술적 구상' 의 명칭은
직접적으로 어떤 유파를 아직 따르지 않는,
이어받지 않은 많은 젊은 미술가가
작품의 시간성에 중심을 두고 작업하고 있다는 점을 기점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이 젊은 미술가들은 갈 곳을 잃고 방황하고 있었던 파리파에 아랑곳하지 않았으며,
마치 미치광이처럼 변해가고 있던 '추상'의 정반대편에 서 있었다.
젊은 미술가들은 미국 팝 아트 미술가들의 작품들을 정확히 꿰뚫었으며, 그들의
요소를 기꺼이 가져다가 자신들 작품에 갖다 사용했다. 그러나 이 젊은 미술가들은
초현실주의의 작업이나 다다의 포토몽타주, 마타의 작품, 장 엘리옹이나 필립 거스톤과
같은 경향의 반대되는 과정에도 많은 공감을 했으며, 알프레드 쿠르메스와
클로비스 투루이의 작품에 대해서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했고,
존도스 파소스나 윌리엄 버로우즈가 만들어 낸 '컷 업' 작품에도 열광했다.
이러한 다양한 영역의 젊은 미술가들은 파리를 택했고, 이어지지 않았던 흔적 없었던 미술계에
백년이 지난 후에야 다시 기초인 회화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리기 시작했다.
앤디 워홀과는 다르게 이 젊은 미술가들은 미술관과 슈퍼마켓을 분명하게 구별 지었으며,
이 젊은 미술가들은 텔레비전과 영화, 만화에 대응해 단순한 모방의 안락함 보다는
미술가로서 고된 창조의 길을 갔으며, 이미지의 분명함보다는 모호함을 선택했다.
단순명료한 사실보다 수수께끼와도 같은 도발을 시도했고,
정적인 아이콘보다는 필연적으로 움직이는 표현의 비밀에 관심을 가졌으며,
무미건조한 분석하고 따지는 것보다는 '서술적 구상'에 맞게 '서술적인' 조합을 선호했다.
회화 언어의 재구축이라는 이름하에 활동하게 된 미술가들은
평범한 일상의 깨달음을 주관적이냐, 객관적이냐의 차이가 아닌
둘다 같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작업에 임했다.
이 젊은 미술가들은 감정적으로 느끼는 모든 것과 몸이 원하는 모든 것 즉
하고 싶은 말을 맘껏 하는 것과 충동적으로 마음의 자극을 받고
순간적으로 행동으로 옮기는 그 욕구의 마음을 ‘작은 감각’에 대한 예찬, 기술이나 솜씨를
뽐내거나 자기도취적인 자기만족에 대응해
냉철하게 객관화된, 무례하기 짝이 없는 비판적 회화행동을 공격하며 나섰다.
이 방법은 그 동안 우리들 현실에서 널리 행하고 있던 나쁜 습관들을 고치기 위한 항거였다.
1959년 독일 출신의 페터 클라젠이 파리에 정착해 여성 신체의 일부분과
전기 스위치를 나란히 설치해 보여줌으로써 자신만의 작품, 또는 계획된
섹슈얼리티의 기계 장치에 종속된 차가운 사랑의 지도를 구성 연출했다.
독일 출신의 화가 리하르트 린드너가 뉴욕으로 망명한 후 그린 그림은
사도마조히즘적인 서커스의 거대한 여주인공들은 화려하고 요란스러운
다양한 색의 이상야릇한 옷을 입은 화려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모순되게도 이 여인들은 타락하고 불쌍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즉 1920년대 초 독일 베를린 미술에서 태어난
반 표현주의적인 전위예술운동인
★★신즉물주의와 표현주의가 키워 새로운 모습의
팜므 파탈(femme fatal)의 모습을 다시 만들어 낸 것이다.
★서술적 구상
1960년대 등장한 그 시대의 사회와 역사적 현실을 은유를 통해 표현한
미술에서 구상회화로의 복귀를 의미하고 있다.
1967년에 전시되었던 신구상회화 전시회<일상의 신화들>에서
비평가 가시오 탈라보가 신구상회화를 ‘서술적 구상’이라고 규정했다.
가시오 탈라보가 이야기를 연속적으로 구상화된 재현으로 보여주는 것이
서술적 구상이라고 정의했다.
가만히 정체된 것이 아닌 인간의 삶처럼
시간의 연속에 의해 이야기와 그 내용이 중요하다고 정의한 것이다.
★★신즉물주의란
20세기 독일 베를린 미술로 문학운동을 기술하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했다.
이 용어는 예술가들의 <신즉물주의>라는 전시회를 개최하면서 처음 사용하게 되었다.
명백하고 확실한 그리고 숨김없는 우리들 일상의
생활 속에 드리운 타락하고, 불쌍한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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