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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45

서양미술사 28

스승보다 운이 좋아 보였던 브라질의 루치오 코스타와 오스카 니마이어는 1959년부터 아테네 헌장의 원칙들을 큰 규모로 적용할 수 있었다. 브라질리아는 넓은 거리와 거대한 행정 건물을 통해 아마존 밀림의 한 복판에 직선의 축과 기념비적 건물들의 준엄한 상징적 논리를 새겨 넣었다. 브라질의 새로운 수도인 이 도시는 급속히 빈민굴로 둘러싸여 인적 없고 황량한 중심 도시가 되었다. 미국에서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1948년 유기적 건축을 선언하고 위스콘신주 미들턴의 제이콥스 저택을 건축하였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는 1959년 사망할 때까지 120채 이상의 집을 건축하였다. 그리고 죽기 전 3년 동안, 1943년부터 계획했던 그의 위대한 작품인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 건축..

Art 2020.08.28

서양미술사 27

르 코르뷔지에 (Le Corbusier | Charles-Edouard Jeanneret-Gris) 뛰어난 미술적 집대성으로서 완성한 건축물은 캅 마르탱의 을 더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면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물 중에 가장 개인적인 작품들 중 하나인 '롱샹 성당'(1950~1955)이다. 르 코르뷔지에는 틀에 박힌 방식을 거부하며 만들어낸 이 건축물에 대해 "어쩌면 무모함으로, 그리고 분명히 용기로써 빚어낸 성실한 콘크리트 성당" 이라고 이야기하였다. 16평방미터가 안 되는 그이 '성(城)'은 치밀하고 기능적이며 역동적인 구조의 한 모델이며, 존재한다는 단순한 즐거움에 한정된 것이었다. 서양미술사 중에서

Art 2020.08.27

서양 미술사 26

르 코르뷔지에는 1943년부터 정리한 '모뒬로르(Modulor)'에 관한 첫 번째 개론서를 1950년에 출판하였다. 이 측정 시스템은 '팔을 치켜든 인간'의 형상에 근거한 것으로 2.16미터의 단위에 맞춰져 있었다. 이 시스템은 주거 시설의 산업적 생산을 지배하던 무질서에 종지부를 찍고, '기계 문명'의 모순을 극복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는 국제적인 모듈식 배열의 한가운데에 '6피트의 인간'을 다시 위치시켰다. 아테네 헌장(1933년)과 도시 계획의 네 기능을 주창한 르 코르뷔지에는 이듬해 인도 펀자브주의 플래닝 어드바이저로 임명되었다. 펀자브주의 주도인 찬디가르의 건설을 맡았으며, 이 도시는 1958년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르 코르뷔지에는 이 도시를 '눈부시게' 만들어냈다. 그는 네루와의 협조적인 관계..

Art 2020.08.26

서양미술사 중에서 25

르 코르뷔지에는 소련의 스타하노프 재건 운동가들과도 같은 이들에게 반기를 들고 마르세유의 '집합 주택'- '정신 나간 사람의 집'이라 불렸던 -을 실현하였다. 이 건물의 건축은 온갖 비난과 매우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 되었으며, 1946년에서 1952년이라는 긴 기간이 걸렸다. 337개의 복층형 아파트 형태인 이 건물은 23개의 다른 형태에 의거하여 지어졌으며, 1인에서 10인 가족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르 코르뷔지에는 이 건물은 '사회적 실험실'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리고 그 안에 내부 통로와 상가 및 부모와 거주자의 방문객들을 위한 공동 숙박 시설을 갖추어 집단적 공간에 대한 새로운 활용을 제시하였다. 또한 '베이비 붐'의 요청에 부응하여 자체적인 탁아소와 유치원도 있었는데, 이 시설들의 커다란 ..

Art 2020.08.25

서양미술사 1950년대 이야기 중에서

전후 세계 곳곳에서 재건과 소비의 시대를 맞아 광고의 놀라운 도약과 가정용 가전제품의 유례없는 발전으로 정돈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감수성의 물꼬가 시작되었다. 1957년 브뤼셀 만국 박람회에서 고도의 상징성을 띤 아토미움이 솟아올랐다. 이 건축물은 공간 속에 태평양의 원자에 대한 복수를 새겨놓은 것이다. 그러나 이 엑소시즘에 생생한 형태를 부여한 사람은 춤추듯 움직이는 조각을 만들어낸 조각가 알렉산더 콜더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이 미국인 거장은 철사로 만든 작은 서커스를 상연하여 몽파르나스의 친구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1930년대에 콜더는 공간 속의 놀라운 데생에 전념하였는데, 그 기법은 마치 안무와도 같았다. 1950년대가 되어 이러한 기법은 열망에 오던 거대한 규모를 띠게 되고 마르셀 뒤샹과 한스..

Art 2020.08.24

내적 제약의 요구에만 복종했던 현대미술...

실존적 경험으로서 세분되고 단편적이며 일시적인 성격을 띤 미술은 '내적 제약'의 요구에만 복종하였다. 창조적 행위는 위험한 안무의 덧없는 순간성과 바타이유가 라스코의 저 깊은 곳 속에 위치한 미술의 기원에서 길어 올린 태고의 확실성 사이에서 동요하였다. 이러한 창조 행위는 한계를 모르는 대담한 탐구가 형식상 발견하는 우연과 표현의 필요성을 결합시켰다. 1930년대의 추상은 철퇴를 맞게 되었다. 기하학적인 낙관론에 의거해 세워진 이 '죽음의 무대 장식'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았다. 샤를 에스티엔의 소책자 [추상 미술은 아카데미즘인가?]는 1950년 드반의 추상 미술 아틀리에 설립을 매우 환영하였다. 이러하여 다른 방식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처럼 재구성되었던 195년대의 미술계에서 50대의 한스 하르퉁은 ..

Art 2020.08.23

서양 미술사 현대미술 중 브람 반 벨데는...

브람 반 벨데는 사무엘 베케트 연극의 한 인물처럼 " 실패하면 실패할수록 더 성공한다."라는 자코메티의 신조를 자신의 것으로 삼았다. 자신을 스스로 "완전히 파손되어 어쩔 줄 모르는 인간"으로 칭했던 그는 1940년에 베케트를 만났다. 그의 그림은 실패와 존재에 대한 무능력함의 회화로서 '끝없는 폭로이자 베일 뒤의 베일, 면 위의 면, 불완전한 투명성, 그리고 벗겨낼 수 없는 것, 무(無)를 향한 폭로'였다. 그것은 또한 시인 자크 퓌트망이 말하는 타협을 모르는 독창성의 '침묵'이기도 했다. 퓌트망은 "예술의 일상적인 수다 속에서, 어떤 사람이 아무것도 할 이야기가 없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며 그의 중요성을 나타내 주는 표시"라고 이야기하였다. 사실주의의 확실성 및 전쟁 이전의 기하학적 추상의 세계에서 멀..

Art 2020.08.22

서양미술사 중 유럽의 부활

프랑스의 미술 기관들은 아라공을 수장으로 하는 공산주의 지식인들이 폐허가 된 미술계 한복판에 내던진 폭탄과 싸우고 있었다. 프랑스식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는 1948년 가을 미술전을 여는 영광을 누렸으며, 앙드레 푸주롱과 더불어 행방기의 국가 미술상을 받는 기적을 달성했다. 같은 해, 프랑시스 그뤼베르가 사망했다. 프랑시스 그뤼베르는 예리한 풍경화와 아틀리에 사이에서 흔들리는 사실주의를 보여준 인물이었다. 그의 아틀리에에서 모델의 고독과 허약하고 벌거벗은 잔인한 진실은 거리를 두고 포착되었다. 이는 그가 공간에 천착하고 인물을 엄격하게 멀리하는 배경의 비참한 세부에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이다. 참상 묘사 주의의 새로운 신동이 나타난 것도 역시 이해였다. 베르나르 뷔페가 그린 뚜렷한 검은 윤곽의 최초의 굶주린..

Art 2020.08.21

서양미술사 중 발튀스, 살바도르 달리

과묵한 태도로 시간을 초월한 발튀스가 있었다. 19세기에서 물려받은 회화적 전통을 고집하였으며, 그 속에서 드가와 쇠라, 세잔, 보나르가 서로 교차하였다. 그는 고전적 구성을 통해 포착한 모호한 모습의 소녀들로 가득 찬 관능성을 만들어냈다. 이 고전적 관능성의 신중한 실내 화파적 방식은 역설적으로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에서 차용하거나, 중세의 몇몇 프레스코화에서 가져온 것으로 향수 어린 통속 판화의 진부함과 완전히 중첩되었다. 그는 이나 의 주제를 다시 다루기도 했다. 그러나 문학에 정통했던 이 화가는 연극의 무대 장식, 특히 알베르 카뮈의 와 의 무대 장식을 통해 자신의 진정한 척도를 발견했다. (1933)에서도 이미 드러난 적이 있는 무대 장식술에 대한 이러한 관심은 (1952~1954)에서 당당하게..

Art 2020.08.20

서양미술사 몬드리안 볼스 르네 추상적 풍경화 사실주의 세르게이

1945년 르네 드루엥 갤러리에 전시된 장 포트리에 의 연작은 프랑시스 퐁주에게는 '공포의 미'를 확인시켜 주었으며, 앙드레 말로는 이 그림들에서 '고통의 상형 문자'를 발견했다. 같은 해 같은 갤러리에서는 한층 더 대담하게 볼스의 작품들을 전시했다. 그의 색채 투사와 한점 한 점의 색들, 묘선, 그라타주, 그리고 못이나 손가락, 붓 자루로 소재에 새긴 홈은 젊은 조르주 마티외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그는 곧 서정적 추상의 떠들썩한 주인공이 되었다. 이 서정적 추상은 작품 속에서 한문명 전체의 열망과 지식, 미학을 승화시켰다. 또 한 명의 대담한 화상인 드니즈 르네는 1944년 그녀의 이복 아틀리에에서 바사렐리의 작품을 전시했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막스 에른스트와 함께 바사렐리의 작품을 전시했다. 그..

Art 2020.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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