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충주의와 과잉 파리의 미술계는 중대한 동요를 겪었다. '해방된' 회화의 획일적 상황이 무너지기 이전인 1948년, '전통'을 향한 호소는 선택된 미술의 땅인 프랑스의 결정적인 역할을 부각 시켰다. 프랑스는 한 세기 동안 인상주의와 큐비즘이라는 중요한 두 운동을 태동시킨 곳이었다. 따라서 추상과 표현주의는 배격되었다. 파리파의 중심적 역할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이 '전통'에서 그것들은 낯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양하고 전 세계에 걸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피에르 프랑카 스텔의 말에 따르면 이 전통은 오직 "미래의 미술이 게르만주의의 병적인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줄 수 있을 뿐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피카소는 어떤 모델 이상의 존재였다. 그리고 마티스의 방대한 파피에 데쿠페들은, 그 자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