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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45

서양미술사 '팝'에 대하여

'팝'이라는 단어는 1956년 리처드 해밀턴의 작은 콜라주 작품에 처음 선을 보였다. 이 작품은 여러 영역을 망라하는 인디펜던트 그룹이 런던의 화이트 채플 아트 갤러리에서 개최한 전시회 포스터 초안이었다. 리처드 해밀턴은 그 자신이 광고 작업을 한 적이 있었으며, 현대 미술 인스티튜트에서 4년간 보석 세공술과 활판 인쇄술, 산업 디자인을 가르쳤다. 그리고 해밀턴과 여러 건축가 화가, 디자이너들은 놀라운 환경을 실현했다. 그들은 문화적 공간 속으로 일상을 옮겨와 그것의 전복을 제시했고, 열광적인 야외 축제의 형태를 띤 이 진정한 집단적 퍼포먼스는 매우 냉소적이면서 전조적인 성격을 표명했다. 라는 긴 제목을 가진 리처드 해밀턴의 콜라주는 가전제품과 같은 기계적 복제 도구들이 부각되어있는 기발한 재산 목록을 ..

Art 2020.09.10

서양 미술사 906 팝 아트

팝 아트의 출현 역시 문화적 위계질서와 미적 범주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지는 것이 특징이다. 당시까지 상극으로 치부되었던 이 두 단어의 조합은 1955년 영국의 미술 비평가 로렌스 앨러웨이의 펜 끝에서 탄생했으며, 대중문화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들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조형 미술의 엄격한 영역 안에서 '해프닝'이라는 미술적 시도의 불경한 행위에 화답한 것은 미술사의 유산뿐 아니라 그것의 규범과 기준 전체와 결별하고자 하는 의지였다. 사회적 현실 및 대중과 단절되어 있던 선배들의 의기양양한 추상에 맞서 기존 가치를 반박함으로써 말뜻 그대로 완전한 사실주의가 탄생했다. 영국 런던 왕립 학교 출신의 젊은 미술가 세대는 극히 보수적인 풍경의 여전히 매우 빅토리아시대적인 구조와 미국에서 대거 유입되어 확산된 값싼 ..

Art 2020.09.06

서양미술사 중 팝 아트 905

'해프닝' 무용가이자 안무가인 머스 커닝엄, 음악가 존 케이지, 화가 로버트 라우센버그가 1952년 블랙 마운틴 갈리지에서 만남으로 발생했다. '퍼포먼스' 예술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 아주 다양한 표현 형식을 뒤섞어 놓은 미적인 범주와 전통적인 문화적 위계질서를 동시에 뒤엎기 위해 순간적 효과를 노린 즉흥적 표현들이 서로 앞 다투어 생겨난 선철학 신봉자였던 존 케이지는 '삶과 다르지 않은 예술, 그러나 삶 속의 행동'을 만들어 내고자 그의 제자였던 앨런 캐프로우, 조지 브레히트, 클래스 올덴버그는 개인을 위한 이 가짜 연극을 아방가르드 애호가들이 '반드시 보아야 할 것'중 하나로 만들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했다 앨런 캐프 로우의 첫 번째 '해프닝'은 1957년 조지 시걸의 작은 농장 가축 사육장에서 ..

Art 2020.09.05

서양미술사 904

1920년 말 곤살레스가 피카소에게 전수했던 금속 기법은 1933년 미국인 데이비드 스미스에 의해 승화된다. 데이비드 스미스는 "용접 금속 고유의 속성은 곧 20 새기의 속성으로서 힘, 구조, 운동, 진보, 파과, 난폭성이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전쟁 기간 동안 탱크와 기관차 공장에서 자동 용접공으로 일했으며, 1948년 공간 속에 돌출된 강철 데생들을 만들었다. 이후 기념비적인 추상 '토템'들을 세웠다. 루마니아 출신의 콘스탄틴 브랑쿠시는 1904년부터 파리 롱생 골목 깊숙이 운둔한다. 콘스탄틴은 비엔날레 참여를 거절하고 그의 마지막 걸작에 몰두. 그 작품이란 그의 아틀리에 자체였음, 그는 1957년 임종 때 이 아틀리에를 현대 미술관에 기증했다. 20년 후 파괴되었던 이 아틀리에는 조르주 퐁피두 ..

Art 2020.09.04

서양미술사 903

초현실주의 마크 로스코는 전쟁 후 거대한 크기의 작품들을 완성했다. 그이 작품은 광휘를 띠는 채색과 달콤한 재료의 부드러운 접합을 이루어 자유로운 추상표현주의를 완성했다. 색의 밀도와 표면, 그리고 가장자리는 사람과 같은 높이에서 관조하며 나아가 명상의 순수한 대상을 이루는 두드러진 구성 요소가 되었다. 묘석이자 입구였던 그이 그림들은 가능한 한 모든 기준들을 거부하고 시간과 공간에 도전했다. 그래서 마크 로스코 작품은 상을 거부하는 정신을 만들어 냈으며 미술과 성스러움의 아득한 결합을 되살려냄으로써 진정한 회화의 성당을 구축함에 힘썼다. 마티스는 '자신들의 상상력에 걸맞은 공간'을 정복하려 떠난 이 화가들을 굽어보는 수호의 그림자였다. 뉴욕의 거대한 화단은 와 마찬가지로 뉴욕 현대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

Art 2020.09.03

서양 미술사 902

1951년 폴록은 피카소 그리고 뉴욕 현대 미술관에 '위탁된' 에게 돌아가 흑백의 형태를 통해 피카소에게 경의를 표현했다. 5년 후 새로운 미국의 전설적인 화가였던 잭슨 폴록은 자동차 사고로 44세의 나이에 사망하게 된다. 잭슨 폴록은 영웅이자 뉴욕 화파의 출현을 만들어낸 순교자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누구도 이 화파의 저항할 수 없는 진보에 족쇄를 채울 수는 없었다. 잭슨 폴록보다 여덟 살 위였던 윌렘 데 쿠닝은 1904년 로테르담에서 출생했지만 1926년부터 미국에서 생활하며 전쟁 기간 동안 뉴욕에서 아실 고르키와 같은 아틀리에를 사용했다. 데 쿠닝의 화법은 매우 도발적이었다. 데 쿠닝은 길게 뻗거나 튄 모양들로 캔버스를 얼룩지게 했으며 이 모양들은 성적인 특징이 강하게 나타나는 여성의 형태를 흩뜨..

Art 2020.09.02

서양미술사 901

대두되는 파시즘의 세력에 쫓겨, 전쟁 기간 동안 유럽의 많은 지성인이 뉴욕으로 이주하였다. 따라서 대서양의 다른 편에서는 페르낭 레제, 피에트 몬드리안, 막스 에른스트, 그리고 시인 앙드레 브르통과 같은 거의 신화적인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아테네가 형성되었다. 칠레 출신의 화가 로베르토 마타는 르 코르뷔지에의 작업실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 그를 잘 알고 있었고, 피카소와 초현실주의자들과도 친분이 있었다. 그는 미숙의 젊은 미술가들과 유럽 아방가르드의 이 걸출한 인물들 사이에서 교두목 역할을 하였다. 이 다작성 화가가 그려낸 무한한 공간과 투명성, 그리고 위성화 된 형태들은 앙드레 브르통을 열광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을 은 주변적 순응주의의 문을 과감히 부수었다. 이때까지 이 순응주의를 동요시킨 것..

Art 2020.09.01

서양미술사 31

아웃사이드처럼 이목을 끌지 않고 베니스와 그 일대에 틀어박혀 지내고 있는 박식한 탐미주의자 카를로 스카르파는 내부 건축에 정성을 쓰고 있었다. 카를로 스카르파는 1949년 아카데미 미술관, 1956년부터 1964년까지는 베로나의 카스텔 베키오 미술관을 재단장 하였다. 많은 전시회의 무대 장식가였던 카를로 스카르파는 1956년 비엔날레 정원 내의 베네수엘라 관을 건설하였고 1973년에는 쿠 에리니 궁을 개축하였다. 전시실 이외에도 정원과 베니스 수로 위에 작은 다리를 새로 만들어 입체와 면, 극도의 정묘한 표현의 달인이었으며, 절도와 엄격성으로 빛을 빚어내고 콘크리트를 조각했다. 또한 카를로 스카르파는 누구보다도 고대인의 방식에 의존했으며 열성적으로 레플리카 했다. 카를로 스카르파가 가르쳤던 베니스 건축 ..

Art 2020.08.31

서양미술사 30

루이스 칸(Louis Kahn | Itze-Leib Schmuilowsky)은 매우 독자적으로 거만하고 귀족적인 고독 속에서 작업하는 건축가였다. 그는 드물지만 종교적인 장소나 웅장한 문화적 건물을 건설하는 커다란 기회에만 모습을 드러냈다. 고대 말의 세계에서 영감을 얻은 그의 건축이 띠는 기념비적 성격은 1962년에 착수한 방글라데시 다카에 있는 국회의사당의 피라네시적인 성격을 통해 정점에 달했다. 폐쇄된 형태의 이 특이한 건물은 그 비밀을 간직하는 이상적인 원 위에서 면들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파리에서는 바우하우스의 마지막 대가 중 한 명인 마르셀 브로이어와 콘크리트 골조 스페이스 프레임의 혁신적 대가 피에르 루이지 네르비, 그리고 프랑스의 베르나르 제르퓌스가 모여 1953년부터 1957년까지 유..

Art 2020.08.30

서양미술사 29

1958년 미스 반 데어 로에와 필립 존슨은 철저한 투명성에 의거하여 유리와 강철로 빚은 멋진 평행 육면체인 시그램 빌딩을 세웠다. 파크 애비뉴에 뉴욕 현대 미술관 높이로 건설된 이 건물의 장식을 배제한 기념비적 성격은 광장의 빈터에 의해 돋보이며, 밤이 오면 칸막이 벽을 통해 여과된 내부 조명에 의해 더욱 빛이 났다. 필립 존슨 (Philip Johnson | Philip Cortelyou Johnson) 건축가는 1979년 AT&T 빌딩을 건축하면서부터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선회하였으며, 이에 따라 시그램 빌딩은 바우하우스 최후의 걸작이 되었다. 바우하우스 이 건물은 내부의 회화로 인해 더 유명하기도 하다. 시그램 빌딩 안에서 1919년 피카소가 그린 발레 의 무대 배경이 걸려있다. 그리고 마크 로스코 ..

Art 2020.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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